안정환 프로필 나이 경력 결혼

2021. 10. 20. 04:15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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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 프로필 나이 경력 결혼 

현재 은퇴한 축구 선수이지만 대한민국 레전드였던 안정환 선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정환은 mbc 축구 해설 위언 겸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역때에는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뛰었습니다.

생년월일

1976년 1월 27일 (46세)

178cm

몸무게

77kg

혈액형

AB형

가족

배우자

이혜원(2001년 결혼 ~ 현재)

자녀

딸 안리원(2004년 5월 3일생)

아들 안리환(2008년 12월 25일생)

학력

서울 대림 초등학교 (졸업)

남서울중학교 (졸업)

서울공업고등학교 (졸업)

아주대학교 (경영학 / 학사)

종교

개신교

소속

리혜원 라이프스타일 컴퍼니 (대표이사)

포지션

세컨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별명

테리우스, 반지의 제왕, 판타지스타, 안느, 축알못

데뷔

1998년 대우 로얄즈 입단

안정환 경력

수려한 귀공자처럼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청소년 대표팀에 뽑혔을 때 오렌지를 처음 먹어봤을 정도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육아를 외할머니에게 맡겨버려 외할머니와 외롭게 성장하는 등, 그가 직접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나와서 이야기한 유년 시절은 그야말로 눈물겨웠다.

사실 처음부터 가난했던 건 아니라고 한다. 외가집이 원래는 잘 살았던 편이기는 했고 한창 부유했을 적에는 큰 어려움없이 자랐지만, 안정환이 6살 때 외가집이 사업 실패로 나락으로 떨어진 데다가 외할아버지가 그 충격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외할아버지의 유산으로 커피숍을 하다가 망한 뒤 다른 곳을 떠돌아다녔기 때문에 외할머니와 단 둘이 판자촌에서 빈곤하게 살아야했다.

흑석동 판자촌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된 안정환은 배가 고파서 무랑 배추서리를 하거나, 굿판을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얻어먹고, 옷이 없어서 남의 집 빨래를 훔치는 건 기본에다가, 산에 흩뿌려진 삐라를 주워서 미군부대에 신고하여 학용품을 마련하고, 방생기간에 방생되는 물고기를 잡아서 다시 되팔아 돈을 마련하고, 차비가 부족해 버스를 타고 가야될 학교를 걸어서 다니고 차비가 역시 아까워서 학교 체육창고에서 잠을 해결하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하루는 안정환이 할머니에게 100원만 달라고 했다는데, 왜 그러냐고 할머니가 물었더니 나가서 아버지를 사오겠다고... 실제로 차두리의 아버지가 차붐이라는 것을 매우 부러워했다고 한다. 안정환의 힘든 유년 시절을 정리한 기사

안정환의 할머니는 축구를 하는 것을 처음에는 반대했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가뜩이나 잘 못먹는 애라서, 운동까지 하면 배가 더 빨리 꺼질까봐 걱정해서였다고 한다.

그래도 축구부가 되면 간식으로 지급하는 빵과 우유를 먹을 수 있어서, 단순히 또래 애들보다 달리기가 조금 빨랐을 뿐인 어린 안정환은 그렇게 축구부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어렵게, 굶주린 배를 잡고 시작했던 초등학교 축구부는 후원하던 선배(선배 아버지의 후원)가 졸업을 하면서 지원이 끊겨 버렸고, 축구부는 폐지 수순을 밟게 된다. 다행히 그해 마지막 경기에 훌륭한 활약을 보인 안정환을 다른 학교에서 유일하게 스카웃했다고 한다. 나머지 애들은 축구를 관뒀다고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축구를 하지만 선배들의 상습적인 구타와 매일같이 피곤한 몸에 여전히 배곯는 고달픈 생활들이 이어진다.

한번은 축구부원 수대로 지급받은 빵과 우유가 하나 비자 선배 한 명이 안정환을 세 시간 동안이나 구타했다고 한다. 그러나 늦게 들어온 다른 선배가 "그거 내가 먹고 나갔는데?" 한마디에 화가 나서 그 길로 합숙소를 도망쳤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안정환은 밥 먹듯이 축구부를 이탈하고 복귀하기를 반복한다.

본인이 말하길 "이 시기에 축구가 즐거워서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때 싸움도 많이 하고 다니던 시절이라 실제 조직에서도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쉬는 날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생활비를 벌기위해 일용직 아르바이트, 공사판을 전전했는데 당시 목동역 건설이 이뤄질때 안정환이 인부로 투입되어 벽돌을 쌓았다고 한다.

심지어 프로에 입단하고 국가대표가 되어서도 할머니에게 아파트를 장만해주고 어머니의 도박 빚을 갚았기 때문에, 금방 돈을 모으지도 못했으며 이 때문에 계속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한번은 이영표의 보약을 얻어먹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주대학교에 진학한 안정환은 졸업해서 거액에 프로축구단에 입단하는 대학교 선배들을 보고 2학년 때 축구로 성공하겠다는 마음을 잡았다고 한다.

1997년 이탈리아 유니버시아드 직후 돌아오자마자 후반에 투입되어 혼자 2골 1어시스트하면서 1대2로 지던 팀을 5대2로 역전승한 일화는 유명. 그렇게 아주대학교의 재단이었던 대우그룹이 운영하는 부산 대우 로얄즈로 자연스럽게 입단하게 된다.

안정환은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 활동했는데요.

안느라는 애칭이 불리게 된 것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안정환의 성을 이탈리아어식으로 읽어 '안느(Ahn)'라는 애칭으로 불렀습니다.

선수로 활동할 당시 긴 머리와 잘생긴 외모 때문에 '테리우스'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습니다.

안정환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육아를 외할머니에게 맡겨버려 할머니와 외롭게 성장한 사연을 이야기했는데요.

처음부터 가난한 건 아니다. 외갓집이 원래는 잘 살았던 편이기는 했고 한창 부유했을 적에는 큰 어려움 없이 자랐지만, 안정환이 6살 때 외갓집이 사업 실패로 나락으로 떨어진 데다가 외할아버지가 그 충격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외할아버지의 유산으로 커피숍을 하다가 망한 뒤 다른 곳을 떠돌아다녔기 때문에 외할머니와 단둘이 힘들게 살았다고 합니다.

가족으로 세 살 연하의 아내 이혜원과 딸 안리원, 아들 안리환이 있다.

아내인 이혜원과의 연애 스토리가 꽤 재미있다. 안정환 본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한 눈에 반해서 그녀에게 대뜸 남자친구가 있느냐 물었고, 없다는 대답을 듣자 좋은 남자를 소개시켜주겠다며 약속을 잡은 뒤 소개팅 자리에 자신이 직접 나갔다고 한다ㅏ.

그렇게 아내와 사귀게 되었으나 아내는 당시 서울에 거주하며 학교를 다니던 학생이었고 그때 안정환이 뛰던 팀의 연고지는 부산이었던 터라 시즌 중엔 자주 만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한번은 안정환이 데이트를 하다가 헤어지기 싫어서 팀 훈련까지 불참하는 사고를 쳤는데, 그 때문에 구단에 벌금도 적잖게 내고 선배들에게 어마어마하게 혼이 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안정환은 아내를 자주 못 만나다 보니 그녀에게 신용카드를 선물하며 자신이 없을 때 이걸로 맛있는 걸 많이 사 먹으라고 했었는데, 아내는 그 카드를 한 번도 쓰지 않은 채 돌려줬다고 한다.

안정환의 할머니는 축구를 하는 것을 처음에는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잘 못 먹는 안정환인데, 운동까지 하면 배가 더 빨리 꺼질까 봐 였다고 하는데요. 힘든 시절을 보냈지만

축구 선수로 성공을 해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후 프로에 입단하고 국가대표가 되어서도 할머니에게 아파트를 장만해 주고 어머니의 도박 빚을 갚았기 때문에, 금방 돈을 모으지도 못했으며 이 때문에 계속 어려운 생활을 했다고 하는데요.

안정환이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킨 것은 2002년 월드컵인데요.

미국과 이탈리아를 상대로 각각 한 골씩 성공하여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특히 16강 이탈리아전에서 연장 후반에 넣은 결승골이자 골든골은 대한민국을 아시아 소속 팀 중 1966년 FIFA 월드컵의 북한 이후 처음으로 8강으로 이끌었습니다.

2006년 FIFA 월드컵 조별 1차 라운드 토고전에서도 역전 결승골을 넣어 통산 3골로 아시아 선수 중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가 되었습니다.

2010년 FIFA 월드컵 명단에 포함되어 팀의 사상 첫 원정 16강에 기여하였으나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뭉쳐야 찬다 감독 이후 뭉쳐야 쏜다에서 에이스로 활약할 것을 기대합니다!!